‘딩동댕동!’ 실로폰 소리와 함께 일요일 낮이면 들리는 송해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 할머니가 들고 올라온 특산물, 각설이 분장을 한 아저씨, 어느동네 쌍둥이 엄마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웃들이 등장해 가끔 박자가 틀려 ‘땡!’ 소리가 나도, 무대 아래 동네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고, 보고 있는 나도 빙그래 웃게 만드는 프로그램. 벌써 30년 째 이어져 오는 이 무대는 바로 전국노래자랑이다. 슈퍼스타K가 처음 방송되었을 때, 나는 전국노래자랑의 21세기 버젼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 등장하는 모든 것이 전국노래자랑과 달랐다. 각설이 분장을 한 참가자도 없었고, 모두 음정과 박자를 척척 맞추었다. 심지어 청중조차 연미복을 차려입고 객석에 앉았고, 더 이상 춤추지 않았다. 그리고 뒤이어 쏟아진 슈퍼스타K2와 위대한탄생 등의 서바이벌 오디션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종류의 위험한 방송이 등장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서바이벌 오디션은 마약이다. 중독성이 강하고, 파급력이 엄청나다. 대부분 황금시간대에 편성되며, 평균시청률은 10%를 넘고, 오디션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도 백만명이 넘는다.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등 주요 선진국의 메이저 방송사에서도 간판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자유주의 경쟁 시스템을 유지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기제로 자리잡고 있다. 첫째, 게임의 룰은 공정하고 절대적이다. 현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정하다. 이것은 오디션이라는 구조와 게임의 룰을 절대화한다. 심사위원이나 멘토같은 전문가는 물론이고, 화려한 강당 객석에 자리한 청중 역시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과거보다 높은 비율로 화면에 비춰지는 청중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어도, 이지적인 모습을 잃지 않는다. 술에 취해 덩실거리던 노래자랑의 시골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둘째, 마지막에 한명만 살아 남는다. 어떤 오디션도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다. 동반성장과 공생발전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건 다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주말 저녁에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승자독식을 배운다. 셋째, 실패의 요인은 개인에게 있다. 권위는 절대적이고 룰은 공정하므로, 패인은 개인의 몫이다. 아름다운 무대를 선보인 착한 소년소녀들의 입을 통해서 “제가 부족해서 그렇죠, 받아들여야죠”라며 패배를 받아들이는 숭고한 모습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넷째, 성공의 열매는 극적이고 달콤하다. 환풍기 수리공은 속칭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 일용직의 하나인데, 허각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 폴 포츠도 더 이상 휴대폰 판매원을 하지 않는다.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속칭 ‘폰파리’라고 불리는 흔한 밑바닥 직업중의 하나이다.
이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한다. “허각을 보라! 폴 포츠를 보라!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 경쟁사회의 룰은 공정한 것이며, 성공하기 위해선 당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공정한 사회에 지친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을 보며 잠깐동안 만족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남아 성공할 수 있는 대안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더이상의 서바이벌 오디션은 안된다. 대신 전국노래자랑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자기 삶을 긍정하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 즐기며, 마지막엔 승자도 패자도 모두가 한 무대에 올라 합창을 할 수 있는 사회는, 그런 내용의 프로그램에서 시작된다. 시청률 핑계는 대지말자. 이 오래된 프로그램, 전국 노래자랑의 시청률도 11%이다.